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시골생활 상사병" :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작중 주인공이 서울에서 시골을 그리워 하며 환상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함
박완서 작가... 우리 이모보다 대략 10살 정도 많은 것 같다. 이모가 살아온 세상은 이런 거였나 하면서 읽었음. 저녁 먹고 그냥 첫 장을 펼쳤는데 ... 그래서? 그래서? 하다가 결국 다 보고 말았다. 할 일 엄청 많은데...
파친코도 그렇고 시골생활 상사병도 그렇고 일제강점기의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 정말로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는 분들이다 (그렇지만 이념투쟁 덕택에 일부의 이름은 의도적으로 잊혀졌다). 아니면 그냥 박완서 작가네 집안 친일파. 이렇게 심판을 해놓고 나는 그런 심판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무관심해야 하겠는데 -
박완서 작가 어머니가 대단하신 분이다. 물론 남편을 잃고, 그 이유가 맹장염인 남편을 앞에 두고 한방 생약을 쓰거나 굿을 하는 시골 풍습 때문이었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채신 덕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 첫째 며느리의 온갖 도덕적 의무를 가볍게 (?) 무시하고 아들 딸 교육시키고자 서울로 가셨다. 어머니가 "패션 디자인: 바느질" 기술이 뛰어나신 덕택에 사업(?)에 성공하시고 그걸로 서울 생활을 보조했다고 한다. ... 그냥 내가 보기엔 박완서 작가는 금수저 집안에서 자라나고 + 교육열 강한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좋은 사립학교 다니고, 그 시절에 서울대(!) 나와서 ... 그냥 전형적인 금수저+엘리트코스를 밟았다고만 이해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시골생활 상사병의 스토리는 "아무리 금수저 엘리트였지만, 사회 혼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도로 요약... 물론 현저동 빈민촌 시절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좋은 학교 다니느라 어머니가 돈을 학비에 쓰셔서 그런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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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묘사도 625 한국전쟁 발발시 1950년 이념투쟁 묘사도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 나에게 더 인상적인 것은 교육...이다. 맹장염에 무당 불러 굿을 하기 보다는, 병원에 가서 제대로 수술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 - 교육
진해(지금은 창원시 진해구)에서 살다가 아빠가 서울로 발령이 나서 국민학교 2학년 (내가 졸업하고 한참 뒤까지 국민학교라고 부름) 겨울에 서울로 왔다. 대단위 주공아파트였기 때문에 입주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세워진 국민학교 중학교가 있었다. 아무리 강북이었지만 서울에 오지 못했으면 내가 지금 이런 삶을 못 살고 있었겠다 싶다. 서울에서 좋은 선생님들에게 좋은 공교육과 사교육을 받고 (사교육은 대치동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함 - 국어를 못해서 국어과외를 많이 했다 ㅋㅋ 서울시 수학경시 준비를 했기 때문에 학원에서 특별반에 편성되어 집중 교육을 받았다 - 아직 선행학습이 유행하기 전이었음)
박사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미국에 가야된다는 교수님들의 암묵적인 신념에 따라 - 어쨌든 미국에 박사유학을 했고, 그리고 이렇게 살고 있다. 나는 현재의 평화로운 생활에 "안주"하고 있었는데 ... 어쩌면, 어떻게 해서든지 "보스턴"같은 곳으로 가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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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건방지게, 내가 장편을 못써서 그렇지 글솜씨는 이 비슷한 정도는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 블로그 글 하나 쓰는데, 문장이 꼬여서 멈춘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ㅋㅋ 그래도 매일 일상을 적고 거기에 상상력으로 양념을 살짝 친 것이 "소설"로 출간될 수 있다면 너무나도 신이 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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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시골에서 소나기를 마주했을 때에 관한 묘사가 있다. 소설 "소나기"가 생각났는데 작가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좌절했다. 정말로 어떻게 황순원의 이름을 잊을 수가 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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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민 금융에 대한 묘사가 있다. 1950-60년대 서민 금융에 대한 비판이 암시적으로 나타남. 1950-60년대는 그냥 엉망진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