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미국보다는 일본의 영향이 아직은 크다고 느낀 예가 하나 있다. 나는 (다른 많은 여성들의 몸이 그러하다고 보이는데) 허벅지가 두꺼운 편이라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 어머 쟤 허벅지 두꺼운 것 좀 봐 코끼리네 코끼리. 그래서 두꺼운 허벅지가 평생의 컴플렉스다. 하여 허벅지 둘레를 줄이는 운동을 평생 시도하고 있는데 (그리고 평생 실패 ㅋ) 미국에서 아마존에 thigh를 검색하면 thigh master 라는 물건이 등장한다. 허벅지 운동을 도와주는 소도구이다. 이 도구로 삼두박근 tricep 운동을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냥 마케팅 같고 하여튼 이름부터 thigh master니까. 80-90년대에 미국에 등장한 몸짱아줌마(?)가 유행시킨 것 같고, 그게 상품화되어서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나만 그런지 몰라도) thigh master 가 그리 이목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보다는 책벅지가 대단히 유행이다. 두꺼운 책을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그저 한동안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시초는 일본의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왔던 다이어트 성공기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책벅지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thigh master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 챌린져스에 공식 챌린지로 "하루 책벅지 10분"은 있어도 "하루 thigh master 10분"은 없는 것이 내가 들이밀 수 있는 증거라면 증거 ㅋ 이다.

 

그래서 내 결론은 한국은 아직 미국보다는 일본의 영향이 크다는 것인데, 앞으로는 다를 것 같다. 내가 보기에  10년 뒤에 경제활동 prime age 가 될 사람들이 일본을 얼마나 좋게 보고 있는가에 달렸는데 - 글쎄다. 

 

------------

 

내 책상 옆에는 언제나 thigh master의 어떤 version이 있다. 1년에 한 번씩은 "에라이 하지도 않는 거 먼지만 쌓이네" 하면서 버리고, 한 달쯤 있다가 새로 산다 - "이번에는 다를 거야!" 하면서. 책상 옆에 놓아두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내 책상 옆에는 성격이 다른 많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절대로 어질러 놓은 것이 아닙니다) 모두 다 내 모자란 기억장치에 도움이 될 요량으로 그 자리에서 나를 유혹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어이 거기 이상하고 기억력 모자란 사람, 일기 써야지! 나 일기장 기억 안나?" "어이 어이 거기 아직 경력 짧은 경제학자씨, 논문 이거 저거 요거 읽어야지! 우리 그 논문들 ... 벌써 의지가 떨어졌냐? 엉 벌써 목표의식을 잃은 거야?" 등등. 그러다 보니 책상은 딱 키보드와 마우스 올려놓은 자리 빼고는 ㅋㅋ 빈틈없이 가득 찼다. 메모를 할 때는 키보드를 어딘가로 잠시 치우고 ㅋㅋ 아니면 갑자기 모든 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책상을 비운다음에 한다. 이런 경우는 바닥이 이제 발디딜 틈이 없어진다.

 

------------

 

임상심리학자가 쓴 "... 나에게 ADHD ... "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내가 어릴 때 ADHD였을 가능성이 몹시 높다는 심증이 굳어진다. 지금은 적어도 자가 검사표로는 ADHD 의심이 되지는 않고 있는데, 이건 매일 일기를 썼던 것이 도움이 되어왔지 않은가 싶다.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쓸 수 있지만,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소음에 관하여서다. 공부 해야 되는데... 나는 마치 "소머즈"같이 세상의 모든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음을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도저히 책이나 문제집에 집중이 되지를 않는 것이었다. 엄마는 나의 신체적 이미지를 비하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나 또 한편으로는 내가 공부관련 부탁하는 건 다 들어주는 분이어서, 내가 방문을 두 개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내 방은 방문이 두 개였음 ㅋㅋ 그래도 소음은 계속 들렸으나 뭐... 나중에는 이게 바깥의 문제가 아니고 내가 체력이 떨어져서 집중력이 동시에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요즘은 그런 식의 발광은 하지 않는 편이다. 거의 모든 소음을 뚫고 공부를 할 수 있음. (나이가 들어서 청각이 둔해진 것일 수도 있음)

 

소머즈를 모른다고? 소머즈... "6백만불의 사나이" 후속편(?) 인데  80년대 말 90년 대 초반에 티비에서 더빙으로 해줬었다. 요즘은 6백만불... 60억이 참 쉬운 말이지만 그 당시에는 "천문학적인 돈"으로 여겨졌다 ㅋㅋ 한 30년 지나면 trillion이 그렇게 느껴지려나. 판데믹으로 미국 의회가 2 trillion worth fiscal package를 통과시켰다. 이 문장이 30년 뒤에 어떻게 느껴질까 모르겠다. ㅎㅎ 30년 뒤에 내가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으려나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83 

 

소머즈의 뛰어난 청각, 구현할 수 있나? - 헬로디디

ⓒ2006 HelloDD.com'프로 테니스 선수였던 제이미 소머즈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다가 낙하산이 안펴져서 중상을 입게 된다. 이에 미국 정부는 6백만불의 사나이 스티브 오스틴에 이어 '바이오닉 우먼'

www.hellodd.com

 

암튼... 

 

오 바로 이런 것이 내 머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보여 주는 좋은 예일 수도 있겠다 

 

------------

 

임상심리학자가 내리는 ADHD에 대한 행동처방은 어떤 것인지 읽어보고 있는데, 요약하면 집안을 정리할 것, 모든 것을 메모할 것, 일기를 쓰고 반성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개선할 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것 등이다. 그냥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이야기들 아니에요? 할 수도 있지만, 책을 보면 좀 더 구체적이다. ADHD들은 머리 속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대신에 그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다. 금붕어에 비유할 수 있다.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약 3초간 기억한다고 보면 뭐 그럭저럭 ㅋㅋ 뭔가 기분이 나쁘지만 그럭저럭... 암튼 그래서 지금 든 생각이 중요한 것이면 무조건 메모를 해야 하고, 이것을 "장기 기억 장치"로 옮겨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생각을 단기기억장치에 잠깐 놓아두어도 괜찮지만 ADHD들은 안됨. 그리하여 ADHD들은 필히 해마 hippocampus를 잘 관리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달리기가 좋다고 한다. 각설하고 집안을 잘 정리해야 하는 이유는 시각적 자극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으로, 장점으로는 그 물건과 관련된 뭔가를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상기할 수 있다는 것이 있지만, 단점으로는 지속적으로 산만해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래서 집안을 잘 정리하는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을텐데, 저자는 단점을 부각하여 "집안을 정리해서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보자"는 제안을 했다. 대신에  메모지를 적극 활용하여 기억장치를 보완하는 것도 함께 제안함. 이건 생각해 볼 문제긴 한데, 집 안에 쓸데없는 물건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닫긴 했다. 

 

--------------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기를 열심히 + 체계적으로 쓰는 것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 성역할이나 혹은 행동기준들이 있기 때문에  여성 ADHD의 경우 증상이 통상적으로 알려진 ADHD의 증상들과는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특히 "구조화" 혹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잘 못한다고. 일기를 쓰고 실패의 데이터가 쌓여서 본인이 주어진 시간 동안 어디까지 뭘 할 수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듯 보인다. 왜냐하면 ADHD니까,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니까, 주어진 시간 동안 남들보다 적게 해낼 수 밖에 없고, 그 부족한 수준이 어디까지 인지, 다음에는 남들보다 얼마나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 1.5배인지 2배인지 2.5배인지 - 를 깨달아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개인적인, 증상의 심각성에 달렸기 때문이다.

 

--------------

 

결론:

 

1. 나는 어렸을 때 ADHD였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 (그리고 현재는 우울증 중증일 가능성도 높다. 기분은 전혀 우울하지 않으나 수면시간이 줄었고 폭식경향이 심각하고 기타 상황을 고려할 때 - 그런데 책에 그렇게 나와서 나도 그런 것 같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 가능성도 높다 ㅋㅋ). 

 

2. 일기를 더 열심히 써야 한다. 남들보다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도 계속 calibration 해야 한다. 

 

3. hippocampus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남들보다 단기 기억 장치는 작지만 장기 기억 장치를 크게 만들자...

외부 저장 장치 관리도 잘 써야 한다. 

 

궁금증

혹시 ADHD들은 나이가 들면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더 취약할까? 아니면 반대일까? 

 

(치매 = 해마 위축, 대뇌 피질 위축이라는 것 같은데) 

 

--------------

 

책 정보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38659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 신지수 | 휴머니스트- 교보ebook

서른에야 진단받은 임상심리학자의 여성 ADHD 탐구기, “자기 행동의 원인을 모르고 산다는 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b>지난 고통에 이름을 주고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한 임상심리학자

ebook-product.kyobobook.co.kr

--------------

 

추가

 

다 쓰고나서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ADHD였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학창시절에 국어 영어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영어를 몹시 싫어했는데, 영단어 외우기가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문법 외우는 건 거의 나에게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과 같다. any 가 부정문에 쓰이면 복수고 의문문에 쓰이면 단수였던가? 반대였던가? 평생 영문법을 공부했지만 문법 책 찾아보고, 당장의 궁금증을 해결한 뒤 24시간 후엔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치매가 남들보다 빨리 오는 게 아닐까 정말 심각하게 걱정한 적도 많다. 

 

수학 공식은 상대적으로 장기 기억 장치에 옮기기가 쉽다: 문제를 한 10-20개 풀어보면 금방 장기 기억 장치로 옮겨감. 그러나 영문법은 고사하고, 영단어도 ... 한국에서 통상 영단어를 암기하는 방식으로 공부 해서는 영 늘지가 않았다. 미국 와서 실제로 써보고, 그게 이상했나 아닌가 머리 속에서 생각해보고 이불 속에서 하이킥 여러 번 하거나, 드라마 10번씩 보고 용례를 장기 기억 장치로 옮겨야만 좀 기억에 남는다. 생각건대,  나의 영어 공부는 다른 사람들과 처음부터 완전히 달랐어야 했었다.... 이게 "어렸을 때 ADHD였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정말 몰랐었음. 나한테 잘 맞는 방법을 계속 찾아보긴 해야겠지만, 그래도 이제 조금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쁘다. 

 

나의 경우, 어떤 공부를 하든지, 큰 틀에서는 기본적으로 연습문제를 많이 풀어봐야 하는 것 같다. 논문들도, 읽고 나면 외부 저장장치에 기록해 두고 뇌 속의 장기 기억장치로 어떻게 들여놓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성인여성 ADH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나 사찰했냐  (0) 2023.10.16
욕구불만이 강한 동기로 작용  (0) 2022.12.18
fall 2022 마무리  (0) 2022.12.16

+ Recent posts